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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사랑하는 법서평 2024. 3. 31. 13:32
불치병이나 사고 등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부딪힐 때가 있다, 아니면 그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각자만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야할 때가 있다. 또는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 것 같은데, 문득 왜 살아야하는지 내면의 공허감이 밀려올 때가 있다.
책 <죽음의 수용소>에서는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그리고 실존적 공허감을 느낄 때 이 두가지 문제의 대안으로 본인이 강제 수용소 체험에서 몸으로 직접 깨달은 것들을 우리에게 얘기해준다
저자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 네 곳을 전전하면서 하루에 빵 10온스 반과 묽은 스프 1과 4분의 3만 배급받고 건축 노동장에서 혹사당하는 등 지옥보다 더한 극한 경험을 겪은 생존자이다.
그가 이 경험으로 전반적으로 얘기하고자하는 큰 줄기는 아무리 최악의 상황에서도 단 한 가지,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고통 속에서도 다른 사람들을 돕지만, 어떤 사람들은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 된다. 영향은 이뿐만이 아니다. 태도는 생에 대한 기대를 잃거나 얻게끔 해 생사여부도 결정짓는다.
그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108p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109p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롱은 자기 목을 부러뜨리도록 선택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 일 때문에 자기 자신이 무너지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겠다고 결심했다.
물론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시련을 가져다주는 상황을 창조적으로 변화시키는 일이다.
212p
인간이 유한한 존재이고, 인간의 자유 또한 제한되어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자유란 조건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조건에 대해 자기 입장을 취할 수 있는 자유를 말하는 것이다.
190p
인간은 조건 지워지고 결정지어진 것이 아니라 상황에 굴복하든지 아니면 그것에 맞서 싸우든지 양단간에 스스로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 그리고 다음 순간에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해 항상 판단을 내리며 살아가는 존재이다.
191p
다음은 그가 얘기하는 불치병이나 사랑하는 이의 죽음 등 피할 수 없는 시련이 닥쳤을 때 가지면 좋을 태도들이다.
1. 시련 속에서도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시련을 기회로 성장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냥 무의미하게 흘러보낸다.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심지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를 제공한다. 그 삶이 용감하고, 품위 있고, 헌신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이와는 반대로 자기 보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동물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 힘든 상황이 선물로 주는 도덕적 가치를 획득할 기회를 잡을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권이 인간에게 주어져있다. 그리고 이 결정은 그가 자신의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기도 하다
111p
사실 수용소에서도 긍정적인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것이 기회인 줄 모르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
(중략)
그런 종류의 사람들은 이것이 단지 예외적으로 어려운 외형적 상황일 뿐이며, 이런 어려운 상황이 인간에게 정신적으로 자기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수용소의 어려운 상황을 자기 정신력을 시험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대신 스스로의 삶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아무런 성과도 없는 그 어떤 것으로 경멸한다. 그들은 눈을 감고 과거 속에서 사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사람에게 인생은 의미 없는 것이 된다.
물론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이 이렇게 위대한 영적인 고지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세상일에서의 실패와 죽음을 통해서도 이런 위대함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그들은 평범한 환경에서도 그런 위대한 성취를 이루어낸다.
(중략)
그곳에도 기회가 있고 도전이 있었다. 삶의 지침을 돌려놓았던 그런 경험의 승리를 정신적인 승리로 만들 수도 있었고, 그와는 반대로 도전을 무시하고, 다른 대부분의 수감자처럼 무의미하게 보낼 수도 있었다.
117~118p
인간 존재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인간에게는 그런 조건을 극복하고 초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가능하다면 세계를 더 나은 쪽으로 변화시킬 수 있고, 필요하다면 자기 자신을 더 좋게 변화시킬 수 있다.
191p
시련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의 견지에서 보자면 삶의 의미는 절대적인 것이다. 적어도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는 그렇다. 그리고 그 절대적인 의미는 각 개인이 지닌 절대적인 가치와 보조를 같이 한다. 바로 이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해 주는 것이다.
216p
저자는 수용소 생활 초기에는 폭력을 무시하거나 거짓 상상으로 현실을 잊는 등 고통을 감소시키려는 시도를 하지만, 이내 시련 속에도 인간적인 성숙을 이뤄내거나 영적인 고지에 오르는 등 무언인가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숨어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후 그는 시련에 등돌리지 않고 시련을 받아들일 용기를 가져 인간적인 성취를 이룬다.
2. 삶의 의미에 질문을 던지지 말고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지 우리 자신에 대해 생각하자, 그리하여 본인 삶에 창조적인 의미를 부여하자.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 시간마다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124p
인생이 그들로부터 여전히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으며, 미래에는 그들이 인생으로부터 무엇인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그중 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그의 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가 그렇게 사랑하는 아이는 지금 다른 나라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다. 또 다른 사람에게 그 대상은 사람이 아닌 일이었다. 과학자였던 그 사람은 책을 써 왔고 아직 완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 일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또 다른 사람의 아이, 그 아이에게 애정을 베푸는 데 있어서 아버지 자리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각각의 개인을 구별하고,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이런 독자성과 유일성은 인간에 대한 사랑처럼 창조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일단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과 그것을 계속 지켜야 한다는 책임이 아주 중요한 의미로 부각된다. 사랑으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나, 혹은 아직 완성하지 못한 일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될 사람은 자기 삶을 던져버리지 못할 것이다. 그는 '왜' 살아야 하는지 알고 있고, 그래서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다.
127p~128p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보다 최악의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157p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짐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본다.
164p
나는 내 동료를 향해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의 삶은 의미를 갖는 일은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는 것, 삶의 무한한 의미에는 고통과 임종, 궁핍과 죽음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말을 했다.
132p
아무리 절망스런 상황에서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마주쳤을 때에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 유일한 인간의 잠재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잠재력은 한 개인의 비극을 승리로 만들고, 곤경을 인간적 성취로 바꾸어 놓는다. 상황을 더이상 바꿀 수 없을 때 -수술이 불가능한 암 같은 불치병에 걸렸다고 생각해보자- 우리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야 한다.
168p
인간의 주된 관심이 쾌락을 얻거나 고통을 피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데 있다는 것은 로고테라피의 기본 신조 중 하나이다. 자기 시련이 어떤 의미를 갖는 상황에서 인간이 기꺼이 그 시련을 견디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169p
사람이 일단 의미를 찾는 데 성공하면, 그것이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뿐 아니라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힘도 준다
201p
저자에 따르면 삶의 의미는 첫째,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만들어지거나 둘째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으로써, 그니까 예를 들면 선이나 진리, 아름다움 등을 체험함으로써 얻어지거나 마지막 세번째는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얻어진다. 그래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마주쳤을 때에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인간적인 성숙을 이뤄내거나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거나 또는 이 책의 저자처럼 본인의 경험으로 아우슈비츠같은 절망적인 상황까진 아니어도 힘든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등 의미를 이끌어낼 수 있다.
3. 미래에 대한 믿음-희망-을 잃지 말자
그는 죽음의 진짜 원인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것은 바로 희망을 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30p
나는 내가 살아남을 확률을 스무 명 중 한 명으로 점쳤다. 하지만 그럼에도 희망을 잃거나 포기할 의사가 없다는 얘기를 그들에게 들려주었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심지어 바로 한 시간 후도 내다볼 수 없기 때문에.
131p
자살 기도가 미수에 그친 사람들이 수없이 하는 얘기가 자살이 실패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말한 사실이다. 자살에 실패한지 몇 주일 후, 몇 달 후 그리고 몇 년 후 그들은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에도 자기에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고, 의문에 대한 해답이 있었으며, 삶에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비록 사정이 좋아질 확률이 천 분의 일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말을 이었다.
"그런 일이 당신에게 어느 날 조만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우선이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일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살아야 하고, 그런 날이 밝아 오는 것을 보기 위해 살아남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살아남아야 할 책임감이 당신을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겁니다."
205p
저자는 수용소에서 미래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곧 사망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니까 삶에서 기대할 게 없는 사람들이 삶에 의욕을 잃어버리고, 그게 실제로도 죽음을 부른 것이다.
즉, 인간의 정신상태와 육체의 면역력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라든 삶에 의미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이 태도를 갖는게 좋은 이유는 실제로도 앞으로의 삶에서 좋은 일이 종종 벌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불치병같은 경우도 현재에는 못고치지만 기술이 발달하면 미래에는 해결될 수도 있다. 그니까, 살아있는 한 뭐든 시도할 수 있다. 설령 좋아질 확률이 천분의 일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치만 죽으면 모든 가능성이 0이 되어버린다. 키케로의 말에서 보듯, 살아있는 한 희망은 있다.
4. 그럼에도 삶은 시련의 연속이다. 고통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고통을 넘어서는 인생을 창조하거나 그게 여의치 않다면 시련에 대처하는 법이라도 배우자.
시련은 운명과 죽음처럼 우리 삶의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110p
여기서 그가 환멸을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아니라 그토록 잔인해 보이는 운명 그 자체이다. 몇 년 동안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시련과 고난의 절대적인 한계까지 가 보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직도 시련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시련에는 끝이 없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시련을 더 혹독하게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44p
수용소에서 생존자들은 해방되면 더이상 시련같은 것은 오지않고 행복한 날들만 오리라 기대했지만, 막상 기대하던 그날이 오자 꼭 수용소는 아니더라도 삶에는 시련이 계속 온다는 사실에 환멸을 갖는다.
그래서 인생에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보다는, 삶에 의미를 새로 부여하거나 삶의 긍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춰 살거나 유머를 익히는 등 시련에 대처하는 삶의 기술을 배우는 게 훨씬 더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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